본문 바로가기
칼럼리뷰

3만 명만 어이없는 일 - 보은군수 주민소환 사건

by ccschool 2020. 5. 23.

보은군수 주민소환 불발…주민참여제도 이대로 좋은가? - 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친일망언’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에 대한 주민소환 불발을 계기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계·학계 등이 관련 제도의 문제점 개선과 적극적인 참여의 필요성을 주��

www.goodmorningcc.com

 

풀뿌리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초등학교모두 지방자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하면서도, 썩 달갑지는 않다. 지방자치가 지극히 하찮은, 초보적인 수준의 민주주인 양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는 함께 숙고하고, 토론하며, 그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는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그나마 민주주의를 체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지방자치다.

지방자치 영역에서 온갖 직접 민주제적 수단이 실험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발안, 감사청구제도까지 풀 패키지가 갖추어져 있다. 가끔 주민소환이나 주민투표가 성사될 조짐이라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듣곤 한다.



최근 보은지역에서 친일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군수에 대한 주민소환이 추진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철회되었다. 주민투표를 위해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되었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부담을 느낀 탓이다.

이 지역은 인구가 3만 명밖에 안 되는 곳이다. 서울 소재 대형 대학 학생 수밖에 안 된다. 필요한 서명인은 4,415명이었고, 서명한 사람은 4,691명이었다.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노골적인 보복을 하지는 않더라도, 얼마나 껄끄럽겠는가. 한 다리, 아니 반 다리만 건너면 얽히고설킨 사람들일 텐데.

언론에서는 군수 쪽이 선관위에 서명자 명단 정보공개 청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하여는 관련 시민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일단 막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화근은 "주민소환법"에 있었다. 이 법은 서명인 명부를 일주일 동안 공개하게 되어 있는 "주민투표법"을 준용하고 있다.

서명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는지, 혹시 누군가의 명의를 도용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조항이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된 방법이다. 서명을 공개하는 것은 투표의 비밀성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주민소환에 관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서명은 주민소환 절차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민소환은 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이라는 '상대가 있는 투표'다. 그들은 어느 정도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 점에서 정책에 대한 가부를 묻는 주민투표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주민투표의 서명인 공개절차를 주민소환에 그대로 적용하게 한 것은 입법자의 치명적 실수다. 공개된 장소에서 열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민이 본인 것만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도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워낙 인구가 많고 이동이 많으니 단체장 또는 의원 측이 명단 열람을 해야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명단 공개 청구를 하면 여론의 십자포화에 단체장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소규모 외딴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보은군에 사는 3만 명 말고,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러다가는 지방에서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도 찻잔 속의 태풍처럼 묻히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실제로 유사한 일이 작년에 경북 예천에서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초집중 사회 대한민국. 헌법에 지역균형발전이 선언되어 있지만, 중앙과 지방 사이의 양극화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크지도 않은 나라다. 관심 정도는 나누면 좋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