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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뷰

그런 걱정을 왜 하는데?

by ccschool 2020. 5. 23.
 

[윤평중 칼럼] 한국 시민사회는 죽었는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가 일파만파다. 윤미향 전(前) 정의연 이사장(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을 둘러싼 추문은 한국 시민운동의 변질(變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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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시작했을 때, 현대철학 입문서로 읽었던 책이 있다. 윤평중 교수의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라는 책이다. 1990년대 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미셸 푸코와 위르겐 하버마스를 한 권으로 '넘게' 해 준다는데, 이 책을 지르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읽고서 머리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 실력이 부족해서였다.

 

오랜만에 윤평중 교수의 칼럼을 읽게 되었다. 무려 조선일보에서 말이다. 음 뭐랄까. 씁쓸하다. '시민사회'라는 단어는 시간에 따라 또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이 칼럼에서는 거의 단락마다 다른 의미의 시민사회를 불러내고 있다. 모르고 쓰셨을 리는 없을 텐데. 뭐 더 평가하고 싶지 않다. 평가할 입장도 안 되고.

 


 

우리의 시민사회는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에서 만들어진 매우 독특한 개념이다. 이 말을 유럽의 시민사회(부르주아 사회)나 미국의 비정부기구(NGO), 비영리기구(NPO) 개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낭패다. 약간 유사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조금씩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유사한 부분보다 상이한 부분이 더 많다.

 

우리의 시민사회는 시민단체라는 말과 단짝이다. 시민단체는 시민운동가에 의해 움직인다. 이 시민운동가가 누구냐가 핵심이다. 1987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6월 항쟁의 주역은 학생운동이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혼자 힘으로 새 세상을 만들 힘이 없었다. 심지어 공식석상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기존 여당과 야당의 정치 엘리트들이 8인 회의라는 것을 구성하여 제9차 개헌 헌법을 만들었다.

 

학생운동가 중 일부는 기존의 정치권의 간택(?)을 받기도 했다. 활용도에 따라서.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관직도 맡으면서, 그 유명한 86세대가 되었다. 물론 대다수는 생업으로 돌아가 우리 사회 허리를 담당하는 평범한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아주 일부는 시민운동가가 되었다.

 

시민운동가들은 각자 전문영역을 맡아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공익적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일부는 시민들의 회비를 통해, 일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에서 나오는 사업비에 의존하면서 일을 해 왔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한 가닥 정의를 외친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도 숱하게 당했다. 

 


 

내가 관찰한 결과는 이렇다. 시민운동가는 조금 더 순진했던 86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86세대와 같은 대학을 나왔고, 같은 꿈을 꿨고, 같은 거리에서 최루탄 샤워를 했던 사람들이다.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제도권 정치에 투신하지 않았을 뿐, 또 다른 의미의 정치를 해 왔던 사람들이다. 모 방송에서 "숨 쉬는 것도 정치"라는 말을 들었다. 하물며 참여하고 비판하고 동원하는 전문가들이 어떻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시나 정치적인 것과 당파적인 것은 다르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완벽한 중립은 없으며 중립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당파적인 경우도 많다. 참고로 보수로 전향한 시민운동가들은 기존 시민운동가들보다 더 정치적이고 당파적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새삼 놀라곤 한다.

 

이런저런 이론들을 끌어와서 시민단체의 고결함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종래 NGO나 NPO 이론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체계와 압력단체 체계의 헌법적 토대는 동일하다."라고 했다. 정당이나 압력단체나 하는 일의 성격이 다를 뿐 다원주의 질서를 구성하는 정치단체라는 말이다. 우리의 시민단체는 공익성을 표방한 정치단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결론은 이러하다. 시민사회/시민단체는 우리나라의 전문 정치인을 양성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법원과 검찰, 관료사회, 언론 출신 인사가 정계에 등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납득하건 아니건 이미 한참 전에 현실이 되었다. 원점으로 돌리지 못할 바에야, 잘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잘하면 분야별 전문성도 있고 정치력도 있는 전문가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잘못 활용하면 정치도 망가지고 시민사회는 더 망가질 것이다. 예컨대 시민단체가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자신의 활동을 이용한다거나, 정치권이 시민단체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 말이다. 물론 법원이나 검찰, 언론이 그런 식으로 이용될 때의(이용되어 왔다) 위험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이 글에는 생략과 비약이 많습니다. 혹시 의견이 다르신 분께서는 댓글 남겨 주세요. 저도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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