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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뷰

성장이라는 해열제로 달래 두었던 정의라는 열병

by ccschool 2020. 5. 25.

 

[공감세상] 리얼 유토피아 / 이주희

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형용모순인 리얼 유토피아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꿈과 실천 사이의 긴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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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은 대한민국을 특별한 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어마어마한 수입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사를 보니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200만 부가 발행되었고 거의 15억 원이 인세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아래 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이 책을 많이 사기는 했지만, 많이 읽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책을 꼼꼼히 읽었지만 정의란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도 마찬가지다. 윤리학의 핵심개념이기도 한 정의를 이 자리에서 감히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감정싸움으로 번진 '정의란 무엇인가' 판권 경쟁>(종합) | 연합뉴스

<감정싸움으로 번진 '정의란 무엇인가' 판권 경쟁>(종합), 황윤정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14-11-2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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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정도는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 대부분 사람들은 오로지 타고난 능력이나 물려받은 재산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그런 세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은 그다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매우 취약한 체제이다. 동일한 노력을 해도 더 많은 돈을 굴리는 사람이 더 많은 수익을 내게 되어 있다. 물려 받은 것이 많으면 교육과 같은 수단을 통해 타고난 능력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불만은 누적될 것이다. 누군가만 일방적으로 좋고,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끝내는 세상에 냉소를 보내거나 심하면 저항하게 될 것이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는 장기적 관점에서 유지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의 질서는 굳건히 버텨왔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경제가 쉼없이 성장하고, 자본은 무한 축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무리 가난해도 중세 비잔틴 제국의 귀족부인보다 부유하다는 미제스의 강변은 허투로 들을 것이 아니다. 게걸스러운 성장의 과실은 기차의 마지막 칸까지 조금씩 전달되었다. 벌레 먹은 것이건, 부스러기 건 간에. 이것이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힘이었다.

 

 

 

 

그런데 만약 기차 마지막 칸까지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성장이 멈추고 제로섬게임이 되어 버린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AI와 코로나가 현실화된 현재 시점에서, 모든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

 

모든 전문가가 나와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예전처럼 해서는 답이 없다." 설국열차에서 기차 밖으로 나가면서 송강호가 한 대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벽인줄 아는데, 사실 문이다." 벽인지 알았던 문을 열고 만나야 할 때가 임박했다.

 

성장이라는 해열제로 어설프게 달래 두었던 정의라는 이름의 열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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